지난 10일간(10월 25일 ~ 11월 2일) 지방에 내려가 여러 곳을 다녀왔다. 오래 전에 정해진 여러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10월 26일 Bicol 지역에 있는 Pamukid 장로교회 주일예배부터 집회는 시작되었다.
다음 날에는 Naga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Garchitorena로 장소를 옮겼다. 집회를 주선한 Edgar 목사에게 집회장소를 물으니 산지 읍내의 중심지역에 위치한 한 거대한 교회당으로 우리를 데려가더니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미국 남침례교가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교회당을 건축했는데 7년 전 건축과정에서 부정 사건이 일어나 건축은 중단되고 교인들은 흩어져 교회당이 오랫 동안 버려져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자기들이 임시로 들어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집회는 오후 3시부터 시작되기에 아직 시간이 있어 우리는 잠시 쉴 곳을 찾았다. 주최측에서 한 곳으로 인도했다. 잘 지은 집이지만 건축하다 중단된 탓에 주변이 어수선했다. 집주인은 필리핀 여인과 결혼한 미국인인데 지금 미국에 가고 아무도 없으니 우리더러 쓰라고 한다. 여관도 없는 산골 읍이라 달리 머물 곳도 없어 함께 동행한 정재영 선교사와 그곳에 여장을 풀었다. 아내를 임평환 선교사 댁에 떼어놓고 온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함께 왔더라면 4시간 동안 거친 산길을 참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고, 우리가 머문 집에는 문짝 달린 방은 하나뿐이라 잠자리가 곤란할뻔했다.
조금 있으니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외지인 방문자 등록을 하라고 한다. 이곳은 공산반군(New People’s Army)이 세력을 갖고 있는 곳이라 혹시 그들에게 납치되는 불상사가 생길 경우 협상을 해야 하니 와서 인적사항을 남기라고 한다. 그곳 사람들에게 들으니 이곳에서는 군수도 그들에게 세금을 내고, 반군과 싸워야 하는 경찰들까지도 세금을 낸다고 한다. (참고: 공산반군은 자기들이 관할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세금을 징수한다. )
경찰서에 등록하고 나니 집회시간이 가까웠다.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교회당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Edgar 목사는 오늘 집회에는 그 동네 사람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섬에 사는 사람들이 조그만 배로 집채만한 파도를 넘어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라 한다. 말씀이 귀한 곳이라 그런지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집회는 곧 시작해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정전이 된 것이다. 지방에서 정전은 매우 흔한 일이긴 하지만 그 넓은 교회당에서 집회를 하려면 전기는 꼭 필요했다. 발전기는 급히 빌릴 수 있었지만 용량이 크지 않아 실내 불빛은 어두웠다. 음향설비도 엉망 수준이었다. 마이크는 녹슬었고 앰프에서 나오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곳에 모인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다. 정재영 선교사의 표현을 빌리면, “어린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악을 쓰듯 울고, 앰프시설은 엉망인데도 그 누구 하나 흐트러진 모습 없이 말씀에 경청하고 있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불현듯 1985년 루손섬 북쪽 산지족을 찾아가 부흥회할 때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 선교사로 부임한지 몇 달도 되지 않아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산길을 걸어 산지족 교회를 찾아가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일부 교인들이 부흥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주 먼 거리를 걸어오고, 또 집회 기간 내내 집에 가지 않고 교회당 맨 땅에서 잠을 자며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통역을 통했는데 통역을 거치면 아무리 좋은 설교도 신통치 않은 법이다. 게다가 그때 나는 별로 설교를 잘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설교가 끝난 후에도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매번 설교를 마치면 질문이 들어왔는데 짧으면 30분, 길게는 두 시간을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그때 받은 잊지 못할 인상을 30년이 거의 지나 다시금 Garchitorena에서 경험한 것이다.
다음 날에는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Calabanga로 와서 집회를 했다. 여기서는 Garchitorena에서 평신도 중심으로 부흥회를 한 것과 약간 달리 낮에는 목회자들과 사역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하고 저녁에는 부흥회를 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찬양을 담당한 Philip 목사 가족이다. 필립 목사와 그 자녀들이 찬양인도, 두 개의 기타 연주, 키보드, 드럼 등 전체를 도맡아 “찬양과 경배”의 시간을 이끌었는데 43세인 필립 목사의 자녀가 12명이라고 한다.
네 번째 집회는 Legazpi 시내에 있는 “Bicol for Christ Legazpi Church”에서 가졌다. 1박 2일의 이번 집회는 필리핀장로교 비콜시찰회가 교단 소속 교회들의 결속을 위해 추진한 모임이었다. 동시에 장로 세 사람(Tom, Tinoy, Robert)을 장립하는 뜻 깊은 자리이기도 했다.
이번 비콜 지역 집회사역에서 감사한 일들이 많지만 그 중에 특히 감사하고 보람이었던 것은 가는 곳마다 우리 비콜신학교 졸업생 혹은 재학생들이 있어 그들이 전적으로 앞장서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22년 전 학교를 시작할 때 학생 몇 명 모집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막막한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이곳 신학교를 거쳐간 사람들을 각지에서 만날 수 있으니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Legazpi 집회를 마치고 8시간을 운전하여 Lucena로 와서 마린두케에서 현지 선교사로 파송한 반조 목사가 목회하는 Lucena Presbycostal Church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반조 목사는 비콜신학교(마린두케 분교)에서 신학을 했다. 오순절 배경을 가진 그가 비콜신학교에서 개혁신학을 배운 후 장로교 교리에 반한 나머지 장로교의 교리와 오순절의 열심으로 사역한다는 결심으로 교회 이름을 장로교(Presbyterian)와 오순절(Pentecostal)에서 따온 이름으로 지었는데 그는 이 지역에 온 이래 세 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주일예배 후 3시간 배를 타고 마린두케로 갔다. 서울영성교회 김재환 집사님의 후원으로 건축 중인 Bognuyan Holy City Church 현장을 둘러볼 겸, 그리고 11월 3일 저녁에 예정된 전도집회에서 설교하기 위해서였다.
열흘 간의 집회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옆집 확장공사로 집안이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왠지 마음만은 편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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